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고서야 망하지 않을 수 없다. 가계도 기업도 국가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강대국들이 쇠퇴한 주된 이유가 바로 재정파탄이다. 그리스와 로마가 그렇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그렇다. 재정파탄이 곪아터져 내란이나 혁명으로 비화된 경우도 드물지 않다.

프랑스 혁명은 재정파탄에서 비롯된다. 당시 부르봉 왕조는 적자의 늪에 빠져 그날그날 빚으로 메꾸어 겨우 연명한다. 견디다 못한 루이 16세는 승려, 귀족 등 특권층에 대한 과세를 핵심으로 하는 타개책을 추진한다.

이를 특권층이 손 놓고 수용할 리 없다. 오히려 왕권을 제한하고 자신들의 봉건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려는 음모를 꾀한다. 하지만 사태는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진다. 마침내 압제와 빈곤에 신음하던 소상공인, 농민 등 평민층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사실 조선 왕조의 패망도 재정파탄에 기인한 바 크다. 대원군은 막대한 경복궁 재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몇 가지 치명적인 무리수를 둔다. 세금을 함부로 올리고 그것도 모자라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낸다. 백성들은 극심한 조세부담과 인플레이션에 이중고를 겪고 민심은 극도로 악화된다.

서원 재산을 몰수하려고 철폐령을 발동하지만, 별 소득 없이 양반 사대부 지배층과 반목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국고는 텅텅 비고, 민생은 거덜 나고,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난다. 일제 침략의 빌미를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지금 우리 국가재정에 빨간 불이 켜진지 오래이다. 정부 부채가 500조원을 육박하고, 공기업 부채가 500조원이다. 가계 부채 역시 1천조원이다. 대한민국이 2천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빚더미에 올라탄 꼴이다. 부채 증가 속도가 마치 눈덩이 불어나는 것처럼 빨라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국가재정이 어려워지면 국가신용도가 하락하고, 국가신용도가 하락하면 금융위기부터 찾아온다. 남유럽 국가들이 겪고 있는 그대로 말이다. 이러다가 대한민국도 그런 나라들처럼 어느 날 폭삭 무너질 수 있음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한 목소리로 국가재정을 걱정하고 있다. 그나마 참 다행스런 일이지만, 걱정에 그치지 말고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서둘러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 대선 때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걸은 복지 공약을 재정상황에 맞게 재조정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더 늦기 전에 지출을 엄격히 통제하는 내용의 재정준칙을 입법화해야 한다. 그래야 무책임한 ‘분배주의’, ‘포퓰리즘’ 정책을 원천 봉쇄할 수 있다. 이 위기국면에 제발 국회가 제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안상정 / 논설위원

안상정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