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최근 내놓은 각종 경기 부양책들이 차기 정부가 쓸 재정을 미리 빌려다 쓰는 '가불(假拂) 재정'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근로소득 원천징수세금을 조기 환급해 주고, 취득세 감면에 따른 지방 세수 감소분을 중앙정부가 보전해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같은 조치들은 공통적으로 내년에 사용하도록 돼있는 예산을 올해 하반기에 미리 당겨 쓰겠다는 것으로, 당장 올해 재정수지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중장기적인 재정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이 때문에 현 정부가 임기 동안의 재정 건전성 유지에만 급급해 부담을 다음 정부로 떠넘긴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추경만은 피하라정부는 13일 임종룡 국무총리실장 주재로 시도지사 대표 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취득세 감소분 가운데 아직 중앙정부가 지급하지 않은 2360억원을 내년 초 중앙정부 재정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올해 주택 취득세율 한시 인하로 발생하는 7천억원(정부 추정치)의 세수 부족분도 내년 재정에서 채워주기로 했다.'근로소득 원천징수 합리화'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올해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액을 줄이는 방식으로 내년 초에 돌려줄 연말정산액을 미리 돌려주기로 했다.

규모는 1조5000억원이다. 원래 내년 세출로 잡히는 연말정산 환급분을 올해 돌려주는 셈이기 때문에 내년 세출예산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정부는 지난 12일에는 '예산 항목 조정'이란 묘책을 냈다.

올해 예산 배정 비율을 그대로 반영하면 내년 예산은 313조원가량의 직접지출예산과 29조원가량의 재정융자예산으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이 가운데 재정융자는 정부가 민간이나 공공기관에 저리로 빌려주는 금액을 의미한다. 정부는 이 재정융자를 3조~6조원가량 줄이기로 했다.

대신 은행들로 하여금 3조~6조원을 민간이나 공공기관에 저리로 빌려주도록 하고, 은행이 금리 차이로 손해를 본 부분을 정부가 보전해 주기로 했다.이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재정융자 사업 규모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정부 예산에 잡히는 재정융자만 3조~6조원 줄게 된다.

정부는 이렇게 줄어든 금액으로 재정적자를 줄이면서, 경기 대응을 위한 직접지출예산을 늘리기로 했다. 사실상 민간의 돈을 끌어다 재정으로 사용하면서 장부상으로는 수지를 맞추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균형재정·경기대응 두 토끼 모두 놓칠 수 있어언뜻 묘안으로 보이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재정에 큰 부담을 준다.

정부가 나중에 돌려받는 재정융자를 줄이고, 한번 쓰면 없어지는 직접지출예산을 늘렸기 때문이다. 예산 총액은 유지되더라도 실질적인 정부 지출이 항구적으로 3조~6조원 더 늘어 장기 재정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

이처럼 현재 경기 대응을 위해 장기 재정에 부담을 주는 것은, 월급날 전에 미리 월급을 타가는 '가불'이나 마찬가지다. 가불을 받으면 당장 쓸 돈은 생기지만, 정작 월급날이 되면 쓸 돈이 줄어들게 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균형재정을 맞춰야 하겠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추가경정예산(추경)과 같은 정공법을 썼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은 보통 일회성 지출을 위해 편성되는데, 올해 재정에는 부담을 주겠지만 내년 이후 재정엔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는 당장 균형재정 목표를 맞춰야 한다는 목표에 갇혀 장기적으로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다. 규모도 작지 않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경기 부양책의 규모가 13조1000억원에 달해 통상 5조원 안팎이었던 예년의 추경 규모를 뛰어넘었다.

정부가 온갖 궁여지책을 내는데도 불구하고 내년 균형재정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다. 경기가 추락하면서 세수(稅收)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돈 쓸 곳은 계속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균형재정을 하겠다던 박재완 장관의 다짐은 최근 들어 "고민 중"이란 표현으로 무척 완화됐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공공 일자리 확대 등 경기 활성화에 직접 효과가 있는 정책을 하려면 추경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 형곤 /보도 2국장

김 형곤 /보도 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