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보름동안 개마고원 장진호 주변에서 사투가 벌어졌다. 1만 2천명 미군 해병 1사단은 꼭 열배인 12만명 중공군 9병단과 맞붙었다.

낮에는 영하 20도, 밤에는 영하 32도, 상상을 초월하는 혹독한 추위는 또 다른 적이었다. 얼마나 추운지 공기밀도가 높아 총알이 덜 나가고, 무엇이든 얼어붙어 부상자에게는 지혈제가 불필요할 정도였다. 사상자는 미군이 7천명, 중공군은 4만명에 달했다.

미군은 악전고투 끝에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장진호 전투는 2차 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2대 동계(冬季)전투로 꼽힌다.

장진호 전투는 6.25전쟁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엄청난 수의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 개입하면서 국제전쟁의 성격은 더욱 뚜렷해졌다. 전황은 어느 쪽도 일방적인 우세를 점하지 못하는 백중지세로 돌아섰고, 곧 정전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나마 다행히 미군이 장진호 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반대의 경우였다면 정말 끔찍한 시나리오이다. 우선 동부전선 10만여명의 한국군과 UN군은 괴멸됐을 것이다.

이른 바 1.4후퇴작전이란 것은 계획조차 없었을 것이며, 패색이 짙어진 만큼 UN군도 어쩔 수 없이 서둘러 자국으로 철수했을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은 지도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장진호 전투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과 중국에서 거의 동시에 장진호 전투를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려 63년만에 G1, G2 강대국들이 스크린을 통해 제2의 장진호 전투로 격돌하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흥미로운 관심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과연 우리는 장진호 전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역만리 머나먼 이 땅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싸우다 숨져간 수많은 UN군을 기억하는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 비극의 역사를 가르쳐주고 있는가? 행여 6.25 전쟁 자체를 잊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이 병력을 파견해 피를 흘렸다. 그 뿐이 아니다. 스웨덴 등 5개국이 의료를 지원해주었고, 미얀마 등 39개국이 물자를 지원해주었다. 그 귀중한 도움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자유를 지킬 수 있었고, 끼니를 때울 수 있었고, 폐허를 복구할 수 있었다.

빚을 지고도 잊으면 신용없는 사람이 되고, 은혜를 입고도 잊으면 망덕한 사람이 되고 만다.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 10위권대 부국이지만, 그 옛날 동족상잔 때 진 빚과 은혜를 갚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장진호 전투가 다시 조명되는 마당에 깊이 자문하고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안상정 / 논설위원

안상정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