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낳은 ‘신풍속도’일까? 요즘 신드롬이라 할 만큼 여기저기서 ‘의리’가 화제이다. 우선 의리파를 늘 자처하던 어느 배우가 소위 ‘의리마케팅’으로 상종가를 치고 있다.

광고모델이 되어 달라, 연예프로에 출연해 달라, 주문이 쇄도한단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나쁜’ 의리로 비난받는다. 자신과 사적 연고가 있는 선수들을 많이 기용하는 ‘의리축구’로 경기를 망쳤다는 것이다. 급기야 의리와 관련된 논란은 정치권에까지 옮겨 붙는다. 집권여당 새누리당 당대표 경선에서 어느 유력한 후보가 의리론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역사상 의리의 화신은 역시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가 아닌가 싶다. 관우는 생전에는 일개 무장이지만 사후에는 신으로 추앙받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대만,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미국 등 여러 나라에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세워져 있다.

관우가 이처럼 존경을 넘어 숭배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의리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역경에 굴하지 않고,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사나이, 어떠한 곤경에 빠지더라도 속임수를 쓰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나이. 무엇보다 극심한 난세에도 그렇게 꿋꿋하게 신의를 지킨 본보기라는 점일 것이다.

“선비는 궁해져도 의리를 잃지 않는다.” 유가에서도 가장 과격한 원리주의자라 할 수 있는 맹자가 한 말이다. 이 말에는 역설적으로 선비라 할지라도 궁해지면 의리를 지키기 어렵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그만큼 의리를 지키며 산다는 것이 어려운데, 더구나 난세라면 오죽하겠는가? 난세에는 당장 오늘 생존하기 어렵고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

난세에는 오히려 의리는 사치스런 것으로 치부되고 어떻게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유능하다고 인정하는 가치관이 횡행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도 난세에 다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감동할 만한 의리를 찾아보기 힘들고, 그렇다보니 의리에 목 말라 한다. 모쪼록 신드롬으로 그치지 않고 진짜로 사라진 의리가 다시 돌아오면 좋겠다.


안상정 / 논설위원

안상정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