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지난 6월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본계약을 체결하면서 이사회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수원은 “이사회 규정상 해당 사업은 의결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과거 유사한 해외 원전 수출 사업에서는 이사회가 열렸던 점을 감안하면 의도적인 절차 생략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1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권향엽 의원이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출을 추진하면서 사업심의위원회까지만 개최하고 이사회는 열지 않았다. 한수원은 지난 4월 8일 사업심의위원회를 통해 최종입찰서를 가결했고, 두 달 뒤인 6월 4일 체코 발주처인 두코바니Ⅱ원자력발전소(EDUⅡ)와 26조원 규모의 본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수원이 자체적으로 정한 해외사업 추진 절차에는 ‘타당성 분석 → 리스크 검증위원회 → 사업심의위원회 → 이사회 의결 → 감사 및 CEO 결재’ 순서가 명시돼 있다. 실제로 한수원은 2022년 이집트 엘다바 원전(3조원 규모) 수출 당시엔 이사회에서 관련 안건을 의결한 바 있다.

한수원은 이에 대해 “이사회 규정 제5조에 따르면 체코 원전 사업은 의결 및 보고 대상이 아니다”며 “자금을 투자하는 사업이 아니라 수익을 창출하는 계약이므로 이사회 상정 대상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치권과 원전업계에서는 “26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수출 사업을 이사회 보고 없이 진행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수익형 사업이라 하더라도 이사회가 사업성·리스크를 검토해야 한다”며 “이사회 패싱은 내부 견제 기능을 약화시킨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상법 제393조 1항은 “중요한 자산의 처분·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 회사의 주요 업무는 이사회 결의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이번 결정이 상법상 절차 위반이자, 향후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경우 ‘업무상 배임’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한수원 이사회 규정 제5조 제24호에는 “기타 이사회 또는 사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을 별도로 상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즉, 경영진이 원했다면 이사회 개최가 충분히 가능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수원 이사회 사무국은 “체코 원전 사업처에서 황주호 사장을 통해 부의 요청을 하면 이사회 안건으로 받을 수 있었지만, 요청이 없었다”고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전력(한전)은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출 계약 체결 직전에도 이사회에 관련 안건을 보고하고, 사업 추진의 필요성과 기대 효과를 논의한 바 있다.

권향엽 의원은 “체코 두코바니 사업은 지난 15년간 한수원이 추진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임에도 이사회 의결과 보고조차 없었다”며 “정부가 대선 국면을 의식해 무리하게 성과를 앞당긴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사들이 본계약 내용을 사전에 검토하거나 사후에 보고받을 기회조차 없었다는 것은, 한수원이 이사회를 형식적인 존재로 전락시킨 것”이라고 덧붙였다.

CNB국회방송 호남총괄본부장 오경태 okt079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