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나의 의사조차 묻지 않았다. 한마디로 방치된 것이다. 통신 수단조차 두절된 채 직장도 가정도 내팽겨진 채 가족여행을 빌미로 강제로 끌려갔는데 납치자인 가족의 말만 들었다."

김모(여·24)씨는 수개월 전 자신이 당한 끔찍한 강제개종을 회상하던 중 말을 잇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지난 4월 아침 출근길을 나선 김씨는 가족에게 납치돼 50일간 부산의 한 원룸에 감금됐다가 겨우 구출됐다.

강제개종피해인권연대(강피연) 대구경북지부가 지난 27일 대구 북부경찰서 앞에서 '가정폭력 강제개종 늦장수사 규탄' 집회를 열었다. 지난 24일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날 집회에는 직접 강제개종교육을 당한 2~30대 청년 300여명이 경찰서 앞에 모여 '강제개종'에 대한 중립적 수사를 촉구했다.

강제개종이란 말 그대로 종교인을 다른 종교로 강제적으로 개종시키는 행위이다. 이러한 강제개종은 같은 종교 아래 교단이 다르다는 이유로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가운데 납치, 감금, 폭행 등 심각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

지난해 12월30일 부모에 의해 전남 화순군의 한 펜션에서 강제적으로 개종을 강요받던 중 쓰러져 숨진 일명 '故 구지인(25·여) 사건'으로 강제개종의 범죄성은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종교적 갈등으로 인한 가족 간에 벌어지는 인권유린이라는 점에서 경찰들이 단순한 가족문제로만 인식하고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강피연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오후 11시50분께 대구시 검단동에서 이모(여·37)씨가 가족들에 의해 납치됐다. 앞서 이씨의 가족들은 범행에 앞서 직장을 휴직했다. 심지어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량 2대를 놓고 갔으며 3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 통신이 두절된 상태이다. 이씨는 평소 가족들과 서로 다른 종교의 문제로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 북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는 이번 문제에 대해 그저 '가족간의 갈등'으로만 보고 있다. 이씨가 가족들에게 강제적으로 끌려간 정황을 인지하면서도 묵묵부답하며 수사를 늦추고 있다는 것이 강피연의 주장이다. 애당초 강제로 끌려간 '납치'가 아닌 '실종'으로 본 경찰은 해당 사건을 강력계가 아닌 여성청소년계에 배정했다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기현 강피연 대구경북지부 대표는 "최소한 경찰은 정씨의 신변파악을 했어야 한다. 평소 다니던 직장은 물론 지인과도 연락이 두절됐으며 납치자인 가족들도 직장을 휴직하고 차량조차 놓고 갔다"면서 "엄연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종교 편향적이자 가족간의 일이라는 식의 안일한 의식이 이같이 피해자를 한달이 넘도록 방치하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 같은 강제개종은 나이가 어리고 연약한 2~30대 여성들을 중점으로 이뤄지고 있다. 개종목사로부터 상담을 받은 부모는 자녀의 개종을 위해 강제 휴직·휴학을 시키고 수면제를 먹여 개종교육의 장소로 납치·감금하는 등 종교적 차원을 넘어서 가정폭력과 더불어 여성인권까지 무너뜨리는 범죄로 확산되고 있다.

강제개종은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가족폭력 행위로 이어지며 사건화가 되더라도 가족 중심의 조사가 이뤄지다 보니 현행법상 배후세력인 개종목사의 처벌이 쉽지 않다. 피해자들은 물론 개종목사에게 속은 부모들 역시 개종교육을 통해 수개월간 직장을 그만두는 등 정신적·물질적 피해가 심각해 강제개종교육을 자행하는 개종목사에 대한 처벌이 시급한 실정이다.

강피연 대구경북지부는 이날 집회를 통해 ▲정부의 강제개종피해방지법 제정 ▲강제개종사건 발생 시 피해자 중심의 경찰의 중립적인 대처 ▲불법강제개종교육을 종용하고 사주한 개종목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강피연 관계자는 "이 같은 경찰의 미온적 수사 태도가 강제개종 범법행위를 더욱 부추긴다"면서 "모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경찰 본연의 공무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피해자 중심의 중립적 대처하기까지 집회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강피연 대구경북지부는 다음달 초 대구지방경찰청 앞에서 강제개종피해자 1000여명과 함께 '강제개종 규탄대회'를 연다는 방침이다.

CNB국회방송. 중부취재본부 정정훈 취재기자 rock159@naver.com